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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 이별을 말하다.

노튼경 2009. 8. 30. 23:20


"꼭 차인것 같다?"

"신경 꺼..."

"술이라도 한잔 사주랴?"

"됐거든. 나 멀쩡해"

"멀쩡한 사람이 얼굴에 '나 죽겠어요'라는 표정을 짓는 건 첨본다."

"자꾸 그러면 가만 안둘꺼야!"

".... 야.. 이제 그만 해. 꼭 쥔 손으론 단지에서 계란을 뺄순 없어...."

 

금새 그친구의 눈엔 몽글몽글한 물방울이 맺혔다.

 

말없이 등을 두드리니 내 어깨에 얼굴을 파 묻고 길 한가운데서 서럽게 운다.

모양새는 꼭 방금 싸운 연인사이인데 남자가 먼저 사과를 한 꼴이다.

 

그렇게 몇분동안 울더니 벌개진 코끝을 훌쩍 거리며 말한다.

"술 사내. 니가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

.

어느날 남자친구라면서 소개 시켜준다고 술한잔 하잔다.

그남자 키도 훤칠하고 잘 생겼지만 어딘가 모르게 눈매가 불안하다.

친구들과 같이 모인자리에서 말수도 너무 적고 사람을 경계하는 눈빛이였다.

 

왠지 그녀를 우리들로 부터 떼어내고 싶어하거나, 또는 우리와 더 오랜기간 알았다는 것에 대해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후로 그녀에게서 간간히 들리는 소식으로는 그 남자는 소유욕이 매우 강한 사람이고

너무나 보수적이였다. 여자친구가 동호회 활동이나 동창회 또는 친목모임에 나가는 것을 너무나 싫어했다.

점점 그는 그녀의 생활에 간섭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녀의 것들로 부터 하나씩 버려지게 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의 가치관과 사랑.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사랑, 그로부터 받는 사랑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했다.

 

그래도 단둘이 있을때는 자신에게 정말 다정하고 권위적이긴 하지만 듬직하게 자신을 잘 잡아준다고 한다.

 

그렇다.

그녀는 그렇게 자위하고 있었다.

무엇에 대한 희망을 가졌을까. 무엇에 대한 미련이 남았길래 그 끈을 단호하게 놓지 못했을까.

 

.

.

.

 

"내 나이 서른 넘어서 엄마한테 아직도 시집 못가고 있다고 맨날 구박 받지. 동생녀석은 누나가 결혼해야 자기도 할수 있다고

은근히 협박해 오지.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서 이정도면 내가 맞춰줄수 있겠다. 싶어서.. 그리고 잘 참을 수 있을것 같아서

내가 더 잘 하고, 내가 더 양보하면 그 사람도 조금은 내 마음과 노력을 알아줄 줄 알았어....."

 

그날 그녀는 술자리 내내 결국 그 사람에 대한 미련이 아닌 자신에 대한 미련으로 괴로워 하고 있음을 내비췄다.

 

 

아무리 보기 좋고, 질 좋은 옷이라도 몸에 맞지 않으면 점점 잊혀지게 마련이다.

몇십년을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하나가 되기 까지는 많은것들에 대한 희생이 요구될 때가 있다.

그 희생에 뛰어들때  적어도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체성 하나쯤은 남겨두자.

상대를 사랑하기에 불태워버릴수 있는 마음이라고 하더라도 돌아갈 길 하나쯤은 마련해 둬야 한다.

 

세상에 알려진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것은 그저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이루어낸 이야기가 아닌 이상은 현실에서는 자신에게 적용될수 있는 사랑이란 것은 그 한계가 너무도 분명하게 보인다.

다만 그속에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라면서 스스로를 조금씩 베어물다 보면 결국엔 헐벗은 뼈만 남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져 버리면 100% 이상의 능력이 생겨 버려  그것이 내 현실적인 한계인양 끝까지 후회없이

불태워 보련다 ...는 열정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문득 무엇인가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나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스스로에게서 느낄수 없을때...

이미 자신은 상처받고 있고 이별을 한 상태에 다다랐을 경우가 많다.

 

 

사랑에도 현실적인 게이지가 필요하다.

 

현실적인 게이지를 얻기 위해서는 타인보다는 나를 더 사랑할줄 알아야 한다.

나르시스의 그것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 과정이 없이 무작정 뛰어든 사랑은 결국 이별로 치닫게 된다.

 

 

조용한 밤길에 쓸쓸히 서있는 가로등.

그 등불로 뛰어드는 밤벌레들의 지독한 날개짓이 애처로워 보인다.